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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누가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는 자입니까?

누가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는 자입니까?

예수님의 종말에 관한 첫 번째 가르침(막 13:5-13)은 모든 인류가 보편적으로 겪는 재난의 시작에서 예수님의 제자이기에 겪어야 하는 구체적인 시련과 박해로 연결됩니다. 마가복음 13장 5-8절이 종말에 관한 역사적 배경이었다면, 9-13절의 내용은 그 역사 속에서 제자 공동체가 감당해야 하는 외부적 박해와(막 13:9-11), 내부적 시련으로(막 13:12-13a) 나누어집니다. 이러한 외부적 박해와 내부적 시련 가운데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가 구원에 참여할 수 있는지 가르치십니다.

(막 13:9) 그러나 너희들은 너희 자신들을 돌아보아라. 그들이 너희들을 공회들에 넘기고, 그리고 너희들은 회당에서 매를 맞을 것이고, 나로 인하여 총독들과 왕들 앞에서 그들에게 증거가 되기 위해서 서게 될 것이다. (10) 그리고 반드시 모든 민족들에게 먼저 복음이 선포되어야 할 것이다. (11) 그리고 그들이 너희들을 넘기고자 붙잡을 때, 무엇을 말해야 할지 미리 걱정하지 말라. 오히려 바로 그 때 너희들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말하라. 왜냐하면 말하는 이들은 너희들이 아니라 성령이기 때문이다. (12) 그리고 형제가 형제를 그리고 아버지가 자식을 죽음에 넘길 것이다. 그리고 자식들이 부모에 대적하여 일어나 그들을 죽일 것이다. (13) 그리고 너희들이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Translated by YG Kim)

전쟁과 지진과 기근 속에서 거짓 그리스도가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때 예수를 참된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제자 공동체는 가장 먼저 자신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희 자신들을 ‘돌아보라’(blepo)의 의미는 단순히 눈으로 보는 행위를 뛰어 넘어 ‘주의하다(to take care),’ ‘조심하다(to watch out),’ ‘경계하다(to beware of)’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시간에 제자 공동체에게 닥쳐올 시련과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정신을 올바르게 하고 스스로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동사는 단순히 자신의 영적 상태를 살펴보는 모습을 뛰어 넘어 앞으로 일어날 핍박과 박해의 상황에서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를 지키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첫 번째 고난의 상황은 제자들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공회’(synedrion: Sanhedrin)들에 넘겨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회’라는 명사를 단수로 사용하고 있지 않고 복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종말의 상황에서 제자들 공동체가 70명으로 구성된 예루살렘 최고 통치 기구인 산헤드린 공회에만 기소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있는 유대인들의 공회(council)에도 넘겨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초대 교회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오순절 성령의 역사 이후에 베드로와 요한이 40년 동안 한번도 걷지 못했던 자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행 3:6)으로 일어나 걷게 한 기적으로 인해 그들은 하룻밤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행 4:3), 산헤드린 공회의 대 제사장들 앞에 섰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을 데리고 유대인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을 더럽혔다(행 21:28)는 이유로 산헤드린 공회에 섰습니다(행 22:30).

예수님께서는 자신으로 인하여 공회에 붙들려 온 자들이 매질을 당하거나 회당에서 매를 맞을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회당에서의 매질은 당시 유대교 공동체 내에서 율법을 어기거나 이단적인 주장을 하는 자들에게 가해졌던 공식적인 태형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의 법전인 미쉬나(Mishna) 마콧(Makkot) 3장 12절의 내용을 보면, 회당에서는 피고인의 옷을 강제로 찢어 상체가 완전히 드러난 상태로 결박하여서 소 가죽으로 만든 채찍에 나귀 가죽 끈을 겹쳐서 때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1장 24절에서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다고 고백하였는데, 이 규정도 신명기 25장 3절이 미쉬나 마콧 3장 10절에 적용된 내용입니다.

With how many lashes does one flog a person sentenced to receive lashes? One flogs him with forty lashes less one, as it is stated: “And he shall strike him before him, in accordance with his wickedness, by number. Forty he shall strike him, he shall not add” (Deut 25:3). The mishna joins the end of the first verse and the beginning of the second, forming the phrase: “By number, forty,” which is interpreted as: A sum adjacent to forty. (Mishna, Makkot 3:10).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는 제자 공동체의 박해가 유대교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의 관리인 ‘총독’(hegemon: governor)들과 ‘왕’(basileus: king)들 앞까지 확장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예언은 사도들에 의해 성취되었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로마 제국이 임명한 분봉왕 헤롯 아그립바 1세(Herod Agrippa I)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행 12:2), 베드로 또한 감옥에 갇혔습니다(행 12:5). 바울은 벨릭스 총독(Governor Antonius Felix)과 그의 후임으로 온 베스도 총독(Governor Porcius Festus) 앞에 서서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24-25장). 더 나아가서 바울은 로마 황제 네로(Nero, AD 54-58년 재위) 앞에서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했습니다(행 27:24; 딤후 4:16-17; Eusebius, Historia Ecclesiastica, Book II, Chapter 22; Clement of Rome, 1 Clement, Chapter 5).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복음이 유대 지역 안에서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제자들이 겪게 될 필연적인 고난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시간에 고난의 이유를 제자들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오직 “나로 말미암아”(heneken emou: because of me)라고 명시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비록 제자들이 법정에 서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경험한다고 할지라도, 그 자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만 종말의 시간에 핍박과 박해를 받는 것을 강요하시는 것이 아니라 친히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 의해 공회에 넘겨지셨고(막 14:55), 매질을 당하셨으며(막 15:15), 총독 빌라도와(막 15:1) 헤롯 왕(눅 23:7) 앞에 서셨습니다. 따라서 종말에 관한 예수님의 예언은 예수님 자신의 수난을 통해 일차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마가는 이를 통해 고난 받는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그들의 고난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임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박해를 언급하는 9절과 11절 사이에 “그리고 반드시 모든 민족들에게 먼저 복음이 선포되어야 할 것이다”(10절)라고 선포하십니다. 이 구절을 마가의 샌드위치 구조(Markan sandwich structure)로 생각해 보면, ‘A(9) – B(10) -A´(11)’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10절의 말씀이 마가의 편집자적 구절(redactional verse)이라고 주장을 하지만(e.g., Joel Marcus, Mark 8-16, The Anchor Yale Bible 27A, Yale University Press, 2009, p. 866),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미 구약성경(사 42:6, 49:6, 시 96편 etc.)에 뿌리를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데이’(dei: it is necessary)라는 동사를 통해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전파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과 목적 안에서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신적 필연성’임을 강조하십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는 박해라는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도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선포되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과 목적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으로 인한 박해의 구체적인 대응 지침으로 제자들에게 성령을 소개합니다(막 13:11). 복음으로 인해 제자들이 붙잡혔을 때 그들은 극심한 공포심과 자기 변호 능력을 상실 할 수 있지만, 바로 그 순간을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성령께서 제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에서 성령은 종말론적 영으로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역을 드러내고(막 1:8-10; 12-13; 3:28-30; 12:36; 13:11), 장차 제자들이 감당할 고난의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을 보면, 오순절 성령의 역사 이후에 사도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의 능력을 전했습니다(행 2:23-36). 더 나아가서 나면서부터 한 번도 걷지 못한 자를 걷게 한 일로 박해를 받고 산헤드린 공회의 대 제사장 앞에 섰을 때에도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서(행 4:8)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능력을 전했습니다(행 4:10-12).

마가복음 13장 12절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제자들이 겪게 될 가장 고통스럽고 실존적인 시련인 가족의 배반과 사회적 증오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형제가 형제를 그리고 아버지가 자식을 죽음에 넘길 것이다. 그리고 자식들이 부모에 대적하여 일어나 그들을 죽일 것이다”(막 13:12)라는 내용은 박해가 공적인 영역을 뛰어 넘어 가장 소중한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종말론적인 비극임을 보여줍니다. 가족간의 비극을 묘사한 이 말씀은 미가서 7장 6절의 내용의 성취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확증됨을 보여줍니다.

(미 7:6)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고 딸이 어미에게 맞서며, 며느리가 자기의 시어미에게 대항하니, 사람의 원수들은 자기 집안 사람들일 것이다. (바른 성경)

실제로 AD 64년 네로의 기독교 박해 당시 로마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는 가족 간의 상호 고발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네로 황제의 기독교 박해와 로마 대화재의 전말을 다룬 타키투스(Tacitus)의 연대기(The Annals) 제15권 44장을 보면, 자신들이 기독교인임을 스스로 자백하여서 체포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밀고(disclosure)에 의해 수많은 무리가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방화죄(the crime of arson)라기 보다 인류에 대한 증오(hatred of mankind)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기독교인들은 짐승의 가죽이 씌워져 개들에게 찢겨 죽었고, 십자가에 처형되었으며, 불타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이 자신 때문에 겪는 핍박이라고 언급하시면서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막 13:1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끝까지 견디는 자’는 단순히 고통을 참는 자가 아니라 끝까지 믿음을 지켜 영적으로 인내하는 자입니다. 이러한 자에게 주어진 복이 구원(soteria: salvation)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박해와 핍박을 받고, 심지어 가족 공동체 안에서의 배반으로 가장 처절한 고통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성령의 도우심과 끝까지 인내하는 믿음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최종적인 구원을 받게 합니다.

<함께 나누기>

  1. 종말의 시간에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1.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공회들’에 넘겨지고 ‘총독’들과 ‘왕’들 앞에 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예를 사도행전의 말씀으로 설명해 보십시오. 사도 바울이 사십에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는데 회당의 관리들이 바울을 때릴 수 있었던 근거가 무엇입니까?
  1. 종말의 시간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고난을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고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과 목적은 무엇입니까?(막 13:10)
  1. 고난 가운데 성령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에서 성령은 어떻게 역사하셨습니까?
  1. 마가복음 13장 12절의 예언이 실질적으로 네로의 기독교인들 박해 가운데에서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1. 누가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는 자입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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