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누여정 – 부족 간의 연결
원주민이 카누를 타는 목적은 조상과 현 세대 사이의 연결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부족 간의 연결이다. 여름에 열리는 카누 여정에 참석하는 부족은 대체적으로 20-30여개 정도다. 이들 대다수는 BC주 해안가에 사는 부족들로 각자의 문화와 언어와 전통을 지니고 있었으나, 기숙학교와 60년대 강제 입양 등 사회 구조적, 역사적으로 지속된 탄압으로 그 본래의 모습이 상당 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원주민 입장에서 볼 때 이는 심각한 인권유린과 역사단절이며, 집단적 인종 말살이다.
이미 수많은 문화적 역사적 단절을 맛본 원주민들은 카누 여정을 통해 현 세대를 잇고 이전 세대와 연결하려 노력하고 있다. 오랜 세월 정부는 원주민의 전통 노래와 춤과 의식을 행하지 못하게 법적으로 막고 탄압했고 한동안 이들은 비밀스럽게 자기 문화를 이어나갔지만, 이제는 공개적으로 함께 모여 부족별로 전해 내려오는 노래를 함께 부르고 춤으로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몇 년 전 보았던 한국 영화 “말모이”가 떠오른다. 일제가 눈을 부릅뜨고 총을 겨누며 위협했지만, 당시 한글 학자들과 시민들은 목숨을 내걸고 일제 몰래 전국의 방언을 모아 한국어 사전을 만들어 냈다. 원주민은 150여 년 간 백인들의 침략과 원주민 문화 말살정책으로 많은 것을 잃어버렸지만 그 와중에도 목숨을 걸고 지켜낸 것들이 있다. 그래서인지, 온 몸으로 끊임없이 노를 젓는 카누 여정은 마치 사력을 다해 잃어버린 파편을 하나씩 끌어 모으는 듯한 느낌이었다. 각 부족이 잊지 않고 지켜내었던 작은 문화의 조각을 한 자리에 모아 본래의 큰 그림을 연결하고 맞춰가는 것이다.
카누 여정을 단순한 취미 생활과 레저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들과 함께 하면서 이 여정이야말로 이들이 조상의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임을 알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조상들이 살면서 만들고 전해준 귀한 보석이 갑작스레 등장한 외부인의 손에 산산 조각나 버렸지만 그들은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났고, 비탄과 상실을 노래와 춤으로 승화하고 카누를 타면서 위로하고 회복하고 있다. 생존(survive)에서 번영(thrive)의 자리로 나아가기 위해 서로를 연결하는 카누 여정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