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글의 이파리 (Leaf by Niggle)
팀 켈러는 <일과 영성>에서 톨킨의 ‘니글의 이파리’를 언급하며 이런 말을 합니다.
“무슨 일하든지 진짜 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도시, 빛나고 아름다운 세계, 흥미진진한 이야기, 질서, 치유, 그밖에 무엇을 추구하든 ‘진짜’는 따로 있다. 하나님이 계시고 주님이 고쳐 주실 미래의 새 세상이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그걸 부분적으로나마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는 작업이다. 기껏해야 눈곱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하더라도 그 나라를 실현해 가는 일이다. 지금 저마다 추구하는 온전한 나무는 장차 반드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마음에 새긴다면 평생 나뭇잎 한 두장 그리는데 그친다 하더라도 낙심하지 않으며, 만족스럽고 기쁘게 일할 것이다. 성공에 도취되어 으스대거나 이런저런 차질에 흔들릴 까닭도 없다.”
J.R.R. 톨킨은 C.S.루이스의 친구로 그리고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분이죠. 널리 알려져 있듯, 반지의 제왕은 어마무시한 스케일의 작품입니다. 반지의 제왕에는 여러 종족들이 등장하는데, 각 종족마다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갖고 있는데요. 톨킨은 소설 속에서 각 종족의 문화와 언어를 창작합니다. 세종대왕처럼 문자까지도 창작한 겁니다. 일을 너무 크게 벌린 거죠. 그러다보니 톨킨은 소설을 쓰다 쓰다 어느 순간 너무 지쳐버렸습니다. 도무지 더 이상은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 때 세계 제 2차대전이 시작됩니다. 톨킨은 두려웠습니다. 전쟁의 공포 때문이 아니라, 전쟁통에 자신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을까봐 두려워졌습니다. 톨킨이 그러한 걱정과 염려에 사로잡힌 어느 날 아침 불현듯 그에게 영감(Inspiration)이 임했습니다. 그러곤 곧 그는 무엇인가에 사로잡힌 듯 짧은 단편 소설을 써내려갔습니다. 그 소설이 바로 ‘니글의 이파리 Leaf by Niggle’입니다.
‘니글’은 톨킨의 소설 속 화가의 이름입니다. 니글에겐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작은 나뭇잎에서 시작해서 무성하고 웅장한 나무를 멋지게 그리고, 그 나무 뒤편으로는 아름다운 풍경이 광활하게 펼쳐진 거대한 그림을 꼭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를 않았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는데요. 첫번째 이유는 그가 나뭇잎 하나를 그리는데도 너무 많은 공을(그림자, 잎파리의 광택, 나뭇잎 끝에 달려 있는 이슬방울의 광택을 묘사하느라) 너무 많은 공을 들였기 때문이었고, 두번째 이유는 그가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니글이 그림을 그리려 하면, 골치아픈 이웃들이 쉴새 없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이것 좀 도와달라 저것 좀 도와달라.” 거절 못하는 니글의 따뜻한 마음을 아는 이웃들은 니글에게 그렇게 온갖 부탁을 하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니글은 거절하지 못하고 다 도와줍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루는 하늘이 열린 듯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옆집 남자가 니글을 다급히 찾아와 부탁을 합니다. “내 아내가 아프니 의사를 좀 불러달라.” 니글은 어김없이 그 부탁을 받고 빗속을 뚫고 의사에게로 달려가다가 그만 독감에 걸리곤 맙니다. 그리고 고열에 시달리다가 니글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죠. 니글은 자신을 찾아온 죽음의 사자에게 엉엉 울면서 외칩니다. “제발요, 아직 완성하지 못했단 말이에요.”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 니글은 천국행 기차에 태워져 천국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때 니글의 눈에 창밖으로 어디선가 매우 익숙한 풍경이 들어오는 겁니다. 어떤 풍경이었을까요? 네, 니글이 그토록 완성하고 싶었던 그 그림이 실제가 되어 천국에 도착한 기차 창밖으로 펼쳐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니글은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그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말입니다.
톨킨은 ‘니글의 이파리’를 쓰면서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위로를 받습니다. 니글은 사실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니글은 오늘 우리 모두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시 우리 인생의 캔버스 위에 잎이 우거진 무성한 나무, 웅장한 숲, 그 뒤의 배경을 화려하고 멋지게 그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 마치 투쟁하듯 날마다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톨킨은 ‘니글의 이파리’를 통해 그런 우리에게 크리스챤의 삶에 대한 매우 값진 한 교훈을 던져줍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내가 계획하고 꿈꾸던 거대한 숲을 다 그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괜찮습니다. 설령 딸랑 이파리 하나만 그려놓고 우리의 인생이 끝난다고 할지라도 괜찮습니다. 이파리 한두장만 그려놓은 인생이라도 그 인생을 통해 가족과 친구와 이웃을 돌보고 섬겼다면 하나님께서는 충분하다 하실 겁니다.
Fullerton 나들목비전교회 권도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