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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샬롬 (1), 웰빙 (Well-Being)의 근원

샬롬 (1), 웰빙 (Well-Being)의 근원

고대 헬라 사회에는 평화에 관한 두 개념이 공존했습니다. 하나는 라틴어 “팍스 PAX”의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희랍어 “에이레네”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팍스란 한 인간이 최고의 영광과 명예를 얻은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한 자와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월계관 쓰는 것을 팍스를 얻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왕관을 쓴 황제는 항상 팍스 상태였습니다. 혼신의 노력으로 높은 벼슬을 얻고 경제적으로 더 많은 부를 이루는 것은 곧 평화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이 평화는 힘과 무기와 권력을 이용하여 갖게 되는 평화입니다. 그래서 로마 제국의 지배에 의한 평화를 “팍스로마나 Paxromana”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팍스어메리카나 Paxamericana”라는 단어도 생겨났습니다. 미국이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군사적 힘으로 세계를 지배할 때 인류에 평화가 깃든다는 뜻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세계 평화를 위해 미군이 주둔한 곳에는 테러가 증가합니다.     

   희랍어 에이레네는 현대 언어로 적합하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사용되는 이 낱말은 일반적으로 전쟁이 중단된 상태를 표현합니다. 이 낱말은 적대적인 감정이나 혈기를 세우며 승리하려는 태도가 전혀 없이 지속적인 상태를 함축합니다. 에이레네는 땅과 인간에게 모든 축복이 흘러나오는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빌레몬은 이 평화를 최고의 선으로 극찬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예를 나열합니다. “결혼식 때 신랑 신부의 마음, 열심히 일한 후 휴일에 얻는 마음, 의지하고 도움 받는 친척 때문에 경험되는 마음, 부모의 보호 아래 있는 어린이가 갖는 마음, 신뢰하는 친구 때문에 갖는 마음, 풍성한 부가 주는 마음, 젊은 건강이 주는 마음, 풍성한 밀 수확 때 얻는 즐거움, 포도주를 마실 때 갖는 마음, 등이 에이레네이다.”

   에이레네는 외부의 성취를 통해서 얻는 팍스와 상반되는 개념으로 내면에서 발생되는 평안입니다. 희랍어 구약 성경인 70인 역은 히브리어 “샬롬”을 번역하기 위해 에이레네를 사용합니다. 에이레네로 번역되는 샬롬은 당시 사회 일반에서 널리 사용되었지만, 이스라엘의 깊은 역사와 신앙의 광범위한 질서를 집약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샬롬은 신앙 세계의 매우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종교적인 내용 없이 사용하게 되면 어떤 경우라도 이 낱말이 지니는 의미를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이 낱말을 단지 “평화”라는 의미와 동일시한다면, 우리는 샬롬의 뜻을 축소하는 것입니다. 이 낱말의 뿌리가 강조하는 것은 창조물의 “웰빙 well-being”입니다. 

   정신과 의사 데이비스는 웰빙에 관해서 이렇게 정의합니다. “웰빙 (Well-Being)은 한 개인이 건강하고 행복하며 번영하는 삶의 상태를 포괄한다. 여기에는 좋은 정신 건강과 높은 삶의 만족도와 의미와 목적이 있고 또한 스트레스 관리 능력이 포함됩니다. 소비생활에 한정한 웰빙은 유기농 제품을 먹고 명상 음악을 듣고 좋아 하는 운동을 즐기는 삶의 형태이다.”

   그렇지만, 샬롬이 담고 있는 웰빙은 현대인의 생각을 훨씬 넘는 인간의 완전한 행복과 안녕 (安寧)입니다. 먼 길을 여행을 하던 부부가 저녁이 되어 유숙할 곳이 었었습니다. 그들을 데려가 재워주는 사람이 없을 때, 한 노인이 나타납니다. “걱정들 하지 마시오 (에이레네). 당신들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다 드리겠소. 이런 거리에서 밤을 니재지 마시오.” 삶의 필요가 다 충족되어 걱정이 없는 상태가 샬롬입니다. 

   샬롬은 사람을 만날 때 그리고 편지를 쓸 때, 상대방의 안녕을 바랄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그의 형제들에게 샬롬을 빕니다. “요셉이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이르되 너희 아버지 너희가 말하던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아직도 생존해 계시느냐.” 더 일반적으로 샬롬은 번영과 형통함을 의미합니다. 이 원리를 시편의 저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샬롬은 형통이라는 낱말과 같이 사용됩니다. 

   샬롬은 변함 없이 지속되는 안정과 관계하여 사용됩니다.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하고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 평생토록 평화로 인한 견고한 삶의 지속을 말씀한 것입니다. 잘 알려진 전도서  3장의 구절에서 샬롬은 전쟁과 대조를 보이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그러나 여기에도 샬롬은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 그 이상의 근본적인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이 나타납니다. 샬롬은 인간의 본성이 찾고 있는 최상의 행복 (well-being)을 의미합니다.   

   히브리 언어 학자인 부르스 월키는 샬롬을 “완성과 성취, 즉 회복된 관계, 온전함과 일치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고 정의합니다. 한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그 개인이 이룰 수 있는 완전함과 성취의 단계로 진입하는 상태를 샬롬이라고 했습니다. 본질적으로 인간의 샬롬은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또한 샬롬은 “야훼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이 원리를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긴다.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라.” 

   에이레네가 있으면 우리 인생은 환경과 무관하게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절벽 벼랑 사이에 깃들인 새 한 마리가 비바람 치는 험난한 날씨 속에서도 평안한 것처럼, 평화의 공급처인 예수 안에 있으면 우리 인생은 평안합니다. 코멜 (W. P. Cornell) 자신이 경험한 이 평화를 이렇게 찬양 시로 표했습니다. 

“이 땅 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 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엎으소서”

인간 삶을 통째로 평안하게 하는 원천은 하나님입니다. 사람이 힘으로 이룬 평화는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집니다. 세상에서 얻은 평화는 보장된 평화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음 속에 주시는 평화는 평생토록 한 개인을 웰빙하게 합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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