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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정결, “하나님께만 전념하는 마음”

정결, “하나님께만 전념하는 마음”

전통적인 유대교는 청결을 매우 중요시했습니다. 부정을 제거하고 깨끗함을 유지하는 광범위한 규례들은 일상 생활에서 율법보다 훨씬 더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을 기록한 미쉬나의 마지막 장은 전체 내용이 정결 규례입니다. 인간 삶의 전 영역의 부정함과 청결함을 구별시킨 내용은 거대하고 매우 복잡한 구조입니다. 일례로 사람이 손을 씻고 목욕을 하기에 적합한 물에 관한 규정을 소개합니다. 첫째, 연못과 도랑에 있는 물과 흐리지 않는 샘물과 구덩이에 있는 40 스아 (seah) 미만의 물은 더럽혀지지 않는 한 손씻기에 접합합니다. 둘째, 아직 흐르고 있는 샘물은 제사장이 제사를 위해 손을 씻을 수가 있습니다. 셋째, 40 세아 정도의 물은 몸을 담그고 씻을 수가 있습니다. 넷째, 물이 적은 샘물은 그릇을 씻을 수가 있습니다. 다섯째, 일반 물이 미네랄 혹은 따뜻한 물로 변화되는 경우는 그 물이 흐를 때만 손을 씻을 수가 있습니다. 여섯째, 깨끗한 샘물은 사람 몸에 나는 종기나 나병환자에게 뿌리는 정화수입니다. 

   유대인들이 종교적인 개념으로 사용했던 “깨끗함,” “정결,” 혹은 “씻음”은 희랍어 “카타로스”입니다. 이 단어가 유대교나 기독교의 전문 용어로 사용되기 전에는 헬라 사회에서 그 의미가 매우 넓었으며 쓰임도 다양했습니다.  호머의 글에서 이 낱말은 사람의 몸에 질병이 없거나 옷이 깨끗하듯이 단순히 “신체적으로 깨끗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곡식이나 동물들 혹은 인종에 어떤 혼합이 없다는 의미에서 “순수함”을 뜻합니다. 때로는 깨끗한 물이나 맑은 햇빛이나 먼지가 없는 깨끗한 바람을 표현할 때도 이 단어가 사용됩니다. 이 낱말은 혈통이 순수한 사람에게도 사용되고, 진정성이 의심할 수 없이 분명한 말에도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사람들이 종사하는 업종에도 사용됩니다. 제과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이 단어는 “흰” 빵을 뜻하기도 합니다. 농부들에게 이 낱말은 키질하여 껍질이 벗겨진 곡물을 뜻했고, 금속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합금이 없는 금속이며, 인간 관계에서는 마음이 나뉘지 않는 상태가 카타로스입니다. 상업에서 이 낱말은 “부채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부과금과 세금을 납부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청구권이 없는 사람을 카타로스라고 합니다. 누군가를 “카타로스로 만든다”는 표현은 그 사람에게 빚을 면제 해 주거나 혐의를 없애 준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신앙에 있어서 “의식적으로 깨끗한 상태,”  즉 하나님께 다가가기에 적합하거나, 하나님께 예배하기에 합당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단어는 희생 제사를 드리는 제단, 희생 제물, 올바른 예식, 예식을 집행하는 사람, 그리고 제사를 드리는 날과 관계합니다. 이 낱말은 또한 “모든 죄와 정신적 오염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입니다. 무고한 손과 도덕적으로 깨끗한 몸과 영혼을 나타낼 때도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깨끗함에 관한 이러한 모두는 의미는 성경이 전하는 청결한 의미에 기여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카타로스는 크게 세 측면의 깨끗함으로 사용됩니다. 첫째는 신체적 깨끗함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발 씻겨주심을 꺼렸을 때, 예수님께서는 신체적 정결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목욕한 자는 온 몸이 깨끗하기 때문에 발만 씻으면 된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이는 영적인 상징성이 있습니다. 회심으로 그 영혼이 죄로부터 깨끗하게 된 사람은 그날의 죄를 매일 깨끗하므로 예수님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신체적 깨끗함의 또 다른 사례는 나병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고칠 때 깨끗해진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은 나병의 흔적과 오염으로부터의 육체적 정결은 질병의 치료와 함께 영혼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카타로스의 두 번째 측면은 종교 예식의 깨끗함입니다. 구약에서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는 것은 종교 예식을 통해 가능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나병환자에게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실 때, 나병이 곧 치유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에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가 깨끗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병고침을 받은 사람은 곧 바로 사회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에게 그 증거를 보이고, 제사장의 회복에 대한 공적인 승인이 있을 때에야 비로서 사회에 재진입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 정결 개념의 세번째는 신약성경이 강조하는 영적 삶의 깨끗합입니다. 예수께서는 산상 수훈에서 이에 대한 논조를 정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청결, 즉 카타로스는 “나뉘지 않는,” “거짓이 없는,”  혹은 “결백한” 입니다. 카타로스가 마음과 함께 사용될 때는 하나님과 연결됩니다. 청결한 마음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나뉘지 않는 마음으로하나님께만 집중되는 한 마음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그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깨끗한 

양심으로 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는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교회의 리더를 선출 할 때는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이어야한다”고 조언합니다. 야고보도 우리는 주님을 섬기기 위해 깨끗한 손과 청결한 마음을 가져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베드로는 참된 그리스도인은 깨끗한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사용하는 카타로스는 그리스도인들의 지배적인 특징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깨끗함의 주제는 문학하는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입니다. 아마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도덕적 정화에 대한 가장 강력한 호소를 담고 있을 것입니다. 아파서 고통스러워 하는 아내를 위해 맥베스는 의사에게 간절히 부탁합니다. “그녀를 치료해 주세요. 당신은 병든 마음을 보살필 수 없습니까? 뿌리 깊은 슬픔을 기억에서 뽑아내고, 뇌에 기록된 문제들을 지워주고, 아주 달콤하고 잊혀지는 해독제로 마음을 짓누르는 위험한 것들 가득찬 가슴을 깨끗하게 할 수는 없습니까?”이에 의사는 “환자 자신이 자신의 병든 마음을 보살펴야 합니다”라고 답합니다.그러자 맥베스는 의사에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시 호소합니다. “박사님, 당신이 할 수만 있다면 내 땅의 물을 그녀에게 끼얹져서 그녀의 질병을 찾아서 치료하여 그녀의 건강이 아주 깨끗하게 정상으로 돌아 오게 해 주세요.”

   의사도 치료할 수 없고 환자 스스로도 불가능한 죄로부터 사람을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 진리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남규 목사

정결, “하나님께만 전념하는 마음”

전통적인 유대교는 청결을 매우 중요시했습니다. 부정을 제거하고 깨끗함을 유지하는 광범위한 규례들은 일상 생활에서 율법보다 훨씬 더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을 기록한 미쉬나의 마지막 장은 전체 내용이 정결 규례입니다. 인간 삶의 전 영역의 부정함과 청결함을 구별시킨 내용은 거대하고 매우 복잡한 구조입니다. 일례로 사람이 손을 씻고 목욕을 하기에 적합한 물에 관한 규정을 소개합니다. 첫째, 연못과 도랑에 있는 물과 흐리지 않는 샘물과 구덩이에 있는 40 스아 (seah) 미만의 물은 더럽혀지지 않는 한 손씻기에 접합합니다. 둘째, 아직 흐르고 있는 샘물은 제사장이 제사를 위해 손을 씻을 수가 있습니다. 셋째, 40 세아 정도의 물은 몸을 담그고 씻을 수가 있습니다. 넷째, 물이 적은 샘물은 그릇을 씻을 수가 있습니다. 다섯째, 일반 물이 미네랄 혹은 따뜻한 물로 변화되는 경우는 그 물이 흐를 때만 손을 씻을 수가 있습니다. 여섯째, 깨끗한 샘물은 사람 몸에 나는 종기나 나병환자에게 뿌리는 정화수입니다. 

   유대인들이 종교적인 개념으로 사용했던 “깨끗함,” “정결,” 혹은 “씻음”은 희랍어 “카타로스”입니다. 이 단어가 유대교나 기독교의 전문 용어로 사용되기 전에는 헬라 사회에서 그 의미가 매우 넓었으며 쓰임도 다양했습니다.  호머의 글에서 이 낱말은 사람의 몸에 질병이 없거나 옷이 깨끗하듯이 단순히 “신체적으로 깨끗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곡식이나 동물들 혹은 인종에 어떤 혼합이 없다는 의미에서 “순수함”을 뜻합니다. 때로는 깨끗한 물이나 맑은 햇빛이나 먼지가 없는 깨끗한 바람을 표현할 때도 이 단어가 사용됩니다. 이 낱말은 혈통이 순수한 사람에게도 사용되고, 진정성이 의심할 수 없이 분명한 말에도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사람들이 종사하는 업종에도 사용됩니다. 제과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이 단어는 “흰” 빵을 뜻하기도 합니다. 농부들에게 이 낱말은 키질하여 껍질이 벗겨진 곡물을 뜻했고, 금속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합금이 없는 금속이며, 인간 관계에서는 마음이 나뉘지 않는 상태가 카타로스입니다. 상업에서 이 낱말은 “부채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부과금과 세금을 납부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청구권이 없는 사람을 카타로스라고 합니다. 누군가를 “카타로스로 만든다”는 표현은 그 사람에게 빚을 면제 해 주거나 혐의를 없애 준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신앙에 있어서 “의식적으로 깨끗한 상태,”  즉 하나님께 다가가기에 적합하거나, 하나님께 예배하기에 합당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단어는 희생 제사를 드리는 제단, 희생 제물, 올바른 예식, 예식을 집행하는 사람, 그리고 제사를 드리는 날과 관계합니다. 이 낱말은 또한 “모든 죄와 정신적 오염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입니다. 무고한 손과 도덕적으로 깨끗한 몸과 영혼을 나타낼 때도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깨끗함에 관한 이러한 모두는 의미는 성경이 전하는 청결한 의미에 기여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카타로스는 크게 세 측면의 깨끗함으로 사용됩니다. 첫째는 신체적 깨끗함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발 씻겨주심을 꺼렸을 때, 예수님께서는 신체적 정결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목욕한 자는 온 몸이 깨끗하기 때문에 발만 씻으면 된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이는 영적인 상징성이 있습니다. 회심으로 그 영혼이 죄로부터 깨끗하게 된 사람은 그날의 죄를 매일 깨끗하므로 예수님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신체적 깨끗함의 또 다른 사례는 나병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고칠 때 깨끗해진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은 나병의 흔적과 오염으로부터의 육체적 정결은 질병의 치료와 함께 영혼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카타로스의 두 번째 측면은 종교 예식의 깨끗함입니다. 구약에서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는 것은 종교 예식을 통해 가능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나병환자에게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실 때, 나병이 곧 치유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에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가 깨끗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병고침을 받은 사람은 곧 바로 사회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에게 그 증거를 보이고, 제사장의 회복에 대한 공적인 승인이 있을 때에야 비로서 사회에 재진입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 정결 개념의 세번째는 신약성경이 강조하는 영적 삶의 깨끗합입니다. 예수께서는 산상 수훈에서 이에 대한 논조를 정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청결, 즉 카타로스는 “나뉘지 않는,” “거짓이 없는,”  혹은 “결백한” 입니다. 카타로스가 마음과 함께 사용될 때는 하나님과 연결됩니다. 청결한 마음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나뉘지 않는 마음으로 하나님께만 집중되는 한 마음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그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깨끗한 

양심으로 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는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교회의 리더를 선출 할 때는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이어야한다”고 조언합니다. 야고보도 우리는 주님을 섬기기 위해 깨끗한 손과 청결한 마음을 가져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베드로는 참된 그리스도인은 깨끗한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사용하는 카타로스는 그리스도인들의 지배적인 특징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깨끗함의 주제는 문학하는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입니다. 아마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도덕적 정화에 대한 가장 강력한 호소를 담고 있을 것입니다. 아파서 고통스러워 하는 아내를 위해 맥베스는 의사에게 간절히 부탁합니다. “그녀를 치료해 주세요. 당신은 병든 마음을 보살필 수 없습니까? 뿌리 깊은 슬픔을 기억에서 뽑아내고, 뇌에 기록된 문제들을 지워주고, 아주 달콤하고 잊혀지는 해독제로 마음을 짓누르는 위험한 것들 가득찬 가슴을 깨끗하게 할 수는 없습니까?”이에 의사는 “환자 자신이 자신의 병든 마음을 보살펴야 합니다”라고 답합니다.그러자 맥베스는 의사에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시 호소합니다. “박사님, 당신이 할 수만 있다면 내 땅의 물을 그녀에게 끼얹져서 그녀의 질병을 찾아서 치료하여 그녀의 건강이 아주 깨끗하게 정상으로 돌아 오게 해 주세요.”

   의사도 치료할 수 없고 환자 스스로도 불가능한 죄로부터 사람을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 진리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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