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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대속, “지불된 몸값”

대속, “지불된 몸값”

전세(戰勢)가 기울자 트로이아 군인들은 새끼 사슴처럼 달아납니다. 그러나 장군 헥토르는 잔혹한 운명이 그를 기다리는 것을 모르고 그대로 버팁니다. 그리스의 장군 아킬레우스는 가장 날쌘 매가 겁 많은 비들기를 덥치듯이 헥토르를 찌릅니다.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들고 슬픔이 극에 찬 프리아모스 왕은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헥토르의 시신을 찾으러 갑니다. 그는 화려한 옷 열두 벌과 외투 열두 벌과 담요와 흰 베 겉옷과 속옷도 그 만큼을 준비하고, 황금 열 두 달란트와 세발 솥 네 개와 선물로 받았던 화려한 잔도 꺼냅니다. 왕은 사랑하는 아들의 시신을 대속하려는 간절한 바람으로 막대한 몸값을 윤이 나는 마차 위에 싣습니다. 헥토르의 몸값을 받은 아킬레우스는 미안한 마음과 함께 헥토르의 시체를 돌려줍니다. 

   호모의 서사시『일리아드』제 24권 “루트라 헥토르,” 즉 “헥토르의 구조”에 나타난 내용입니다. 희랍어 루트라는 대가로 지불된 금액을 의미하는 “루트론”의 복수 형태입니다. 고전 희랍어에서 누군가를 구출하기 위해 지불한 대가를 루트론이라 표현했습니다. 희랍어 사전인 렉시콘 (Lexicon)에는 루트론을 아주 간략하게 “지불된 가격,” “몸값,” 그리고 “대속물”이라고 정의합니다. 잔혹한 노예 상태에 있는 사람이 자유인이 되도록 구출하기 위해 지불된 돈이 루트론입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는 노예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특별한 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노예 신분인 사람이 자신이 얻은 작은 수입을 수년 동안 신을 섬기는 신전에 저축합니다. 예치한 돈이 자신이 자유의 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액수가 차게 되면, 신전에서 일하는 제사장은 노예의 주인을 만나서 자유의 대가를 지불합니다. 노예였던 사람은 이제 신의 소유가 됩니다.  대신, 그는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워집니다. 고대 그리스의 비문에는 노예였던 사람이 지혜와 전쟁의 신 아테나에게,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또는 태양의 신 아폴로와 같은 신에에게 팔린 것을 새긴 많은 비문들이 있습니다. 주인에게 자신의 몸값을 지불한 노예는 이제 사람에게 자유인이 되고 대신 자신을 산 신의 소유되 된 것입니다.

   자신의 작품 『유대 고대사』에서 요세푸스는 전쟁의 포로를 석방시키는 비용을 루트론이라 표현합니다. 유대를 황폐화 시킨 이집트 군인들은 유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자신들의 나라로 데려와 노예로 팔았습니다. 노예가 해방되기 위해서는 한 사람 당 일백 이십 드라크마의 몸값인 루트론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나일강 주변에서 발견된 파피루스에는 “담보의 상환”으로 루트론이 사용됩니다. 전당포나 담보로 맡겨둔 옷이나 망토 그리고 재산의 일부를 되찾는행위를 표현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단어는 무엇이든 원래 소유했던 사람에게 돌려 보낸다는 뜻입니다. 원소유자를 떠나 외부자의 권리와 힘으로부터 무언가를 구출한다는 개념이 있습니다.
  옛 이스라엘 사회에서 루트론은 피해의 배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람을 들이 받는 버릇이 있어 위험하다고 알려진 소의 주인이 그 소를 제대로 가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 소가 사람을 들이받아 죽인 경우, 몸값으로 루트론, 즉 “피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생명은 박탈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고의로 다른 사람을 살해했다면 그를 위한 루트론이 있을 수 없으며 그는 처형되어야 했습니다. 합니다. 가난한 이스라엘 사람이 부유한 나그네에게 자신을 팔면 더 부유한 친척이 그를 살 수 있었고 그 값은 루트론이었습니다.

   희랍어 구약성경에 루트론은 매우 자주 언급됩니다. 이 단어는 지속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신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약속합니다. “나는 여호와이다. 큰 능력으로 너희를 이집트 사람들의 노예 생활에서 풀어 주어 자유로운 몸이 되게 할 것이다 (루트로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루트로오) 기억하라”고 명령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명령에 반응하여 종의 신세였던 자신들을 하나님께서 구속 (루트론)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시편의 저자들과 구약의 선지자들은 환난과 고난의 시기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보호하고 구원하시는 행위를 루트론으로 표현합니다. 시편의 저자들은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환난에서 속량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 때마다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라고 감사했습니다.  이 용법은 선지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이어진다. 하나님은 위기와 환난에서 고통당하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주님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루트론은 언제나 예수님과 관계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사명을 이렇게 선언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하면서도 동일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

   루트론은 언제나 사람이 이행해야 했던 법적 의무로부터 그 사람을 해방하기 위한 대가의 지불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 루트론은 당사자 자신이 지불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그를 대신해서 지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빚과 책임으로부터 그를 해방하기 위한 합당한 대가와 지불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대속하셨습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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