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설교단상 형통함: 돌아보니 하나님이셨습니다창세기 45장 5-8절밴쿠버한인장로교회 김대희 목사

[설교단상] 형통함: 돌아보니 하나님이셨습니다창세기 45장 5-8절밴쿠버한인장로교회 김대희 목사

형통함: 돌아보니 하나님이셨습니다_창세기 45장 5-8절

밴쿠버한인장로교회 김대희 목사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해 믿음의 삶의 자리 위에 새겨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베풀어 주시는 수많은 사랑과 은혜를 단지 몇 문장이나 표현으로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성경 말씀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한결같이 드러나는 은혜의 흐름이 있습니다. 그 은혜의 흐름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길을 인도하시고, 지키시며, 살피시고, 돌보십니다. 더 나아가 그 모든 믿음의 여정 가운데 하나님의 형통함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 말씀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흐름 속에서 형통함의 은혜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형통함이라는 말은 ‘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감’을 의미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그리고 계획하는 대로 일이 잘 풀리고 성공을 이루어 갈 때, 사람들은 그것을 삶의 형통함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이 들려주는 믿음의 삶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면, 믿음의 사람들이 모든 일이 뜻대로 잘 풀리고,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형통함과는 거리가 먼, 여러 가지 어려움과 괴로움, 낙심과 아픔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삶의 기록을 마주하게 됩니다.

성경말씀이 기록하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의 삶에도 실패와 낙심, 슬픔과 눈물,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절망의 이야기가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현실을 견디며, 길고 불안한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배신과 버려짐의 아픔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삶에도 깊은 괴로움과 절망의 이야기들이 있음을 잘 보여 주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된 인물이기 때문에 흔히 잘 풀리고, 성공한 인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요셉의 인생은 고난과 역경, 그리고 눈물과 슬픔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요셉의 삶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낯선 땅을 향해 걸어가며 품어야 했던 불안함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할아버지 이삭이 삶의 터전인 우물들을 거듭 포기하고 양보하며 견뎌야 했던 억울함도 이어집니다. 또한 아버지 야곱의 삶을 관통했던 속임과 고단한 삶의 흔적들이 요셉의 인생 속에서도 발견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아픔보다 더 극심한 고통이 그의 삶에 자리해 있었는데, 바로 “버림받음”입니다. 요셉은 가족인 형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깊은 구덩이에 던져 버렸다가,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그를 건져내어 낯선 땅, 이집트로 가는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 넘겼습니다. 

요셉은 그 과정에서 깊은 아픔과 슬픔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노예로 팔려 간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척박한 삶의 자리에서도 최선을 다해 성실하고 진실한 삶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고 맙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삶을 통해 발견해야 할 하나님의 형통함의 은혜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잘 안 풀리고, 막혀 있는 것 같은 삶의 자리에,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형통함의 은혜가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는 요셉의 삶에 새겨진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통해, 성경이 말하는 참된 형통함의 의미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믿음의 삶에서 형통함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입니다. 창세기 39장은 요셉의 삶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통함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특별히 창세기 39장 2-3절 말씀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이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오. 요셉의 인생은 겉으로 보기에는 요셉 자신의 삶의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성경 말씀은 요셉의 형통의 이유를 그의 능력이나 지혜, 또는 그의 인내나 노력에서 찾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된 이유라고 선포합니다. 요셉이 버림받고 팔려 온 자리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요셉은 형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요셉의 형통함을 선포하는 창세기 39장 2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앞의 내용에서 요셉은 버림받고 외면당하고 팔려 온 자리에서도 형통한 사람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형통한 사람 요셉은 이제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비참한 삶의 자리에 대해서 성경 말씀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는 형통한 사람이라고 선언합니다. 요셉은 감옥에 갇혀 있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고 그의 삶을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요셉이 살았던 삶의 이야기는 버림받고, 외면당하고, 막혀 있고, 갇혀 있는 삶의 이야기입니다. 요셉의 삶에는 분명 고통과 역경과 괴로움, 비참함의 흔적들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시선으로 보면, 너무나도 분명했던 요셉의 삶의 고난의 자리마다 누가 보일까요? 요셉이 버림받은 자리에는 형들이 보입니다. 요셉이 팔려 가는 자리에도 형들이 있었고 또한 상인들이 있었습니다. 요셉이 시험과 역경을 겪었던 자리에는 요셉을 유혹하고 누명을 씌웠던 사람, 요셉을 오해하고 믿어주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어려움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결국 요셉을 버렸던 형들 때문입니다. 형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있을 수밖에 없는 자리입니다. 

하지만 요셉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리를 믿음의 눈으로 다시 돌아보면, 그 모든 자리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버림받은 삶의 자리마다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온 자리, 그의 인생의 길이 완전히 막혀버린 자리를 믿음의 눈으로 돌아보니 그 곳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고, 절망 속에 갇혀버린 자리에서도 요셉과 함께 계셨고, 그에게 형통함의 은혜를 더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형통함의 은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진 형통함은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누려야 할 참된 형통함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삶입니다. 혹시라도 일이 잘 풀리는데, 내 삶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다면 그것은 형통함이 아닙니다. 이와는 반대로, 모든 것이 막혀 있는 것 같아 답답하고 괴로운 삶의 자리, 그리고 눈물로 버티고 견뎌야 하는 삶의 자리일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곳은 절망의 자리가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따라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형통함의 자리입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형통함이라는 은혜의 본질이라고 분명히 증언합니다. 

둘째로, 믿음의 삶에서 형통함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행하심”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 은혜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오랜 고난의 시간을 지나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앞에 자신을 구덩이에 던지고, 노예로 팔아버렸던 형들이 찾아옵니다. 당시 온 세상을 덮쳤던 큰 가뭄과 극심한 기근 속에 형들은 먹을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애굽까지 찾아왔고, 요셉 앞에 섭니다. 

요셉은 바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기보다 시간을 둡니다. 동생 베냐민을 부르고, 형들을 시험하는 과정을 거친 뒤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힙니다. 그리고 바로 이 과정에서 요셉은 너무나도 중요한 하나님의 형통함의 은혜를 고백합니다. 창세기 45장 7절과 8절 말씀입니다.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형들을 마주하며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봅니다. 그의 기억 속에는 자신이 버림받았던 자리, 팔려 온 자리, 삶의 역경을 넘어야 했던 비참한 삶의 고비들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 요셉은 그 시간 속에서 누구를 보고 있습니까? 그는 그 비참한 삶의 자리에서 함께하셨던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요셉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은혜의 일들을 돌아봅니다. 요셉은 자신이 버림받았던 그 비참한 삶의 자리를 돌아보며, 그 비참한 삶의 자리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그의 삶을 인도하여 주신 은혜의 자리’였음을 고백합니다. 

요셉은 분명 세상 속에서 버림받았고, 외면당하고, 또한 억울하게 갇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삶의 자리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하시며, 그의 길을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그의 어려움을 살피시고 돌보셨으며, 그를 하나님의 형통함의 은혜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요셉은 단지 애굽의 총리의 신분으로 형들 앞에 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 위에 서 있음을 고백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사도바울이 드린 이 믿음의 고백은 아주 오래전, 요셉의 믿음의 삶을 통해 증거된 믿음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성경 말씀이 전하는 형통함의 은혜는 ‘일이 잘 풀리고, 뜻대로 잘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뜻하신 방향으로 나아간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삶을 보십시오. 요셉은 버림받았지만, 그 버림받음의 시간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께서 뜻하신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고 누명을 쓰고 절망의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결국 그의 삶은 하나님께서 뜻하신 길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아픔의 자리에서 함께 하셨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팔린 그 삶의 자리에서, 많은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요셉을 선택하셨습니다.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삶의 자리도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사랑으로 지키시고 돌보시는 은혜의 자리였습니다. 요셉은 그 괴로움의 시간들을 통해 더 가까이, 더 깊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었습니다. 

성경 말씀이 선포하는 형통함의 의미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형들 앞에 다시 섰을 때, 요셉에게는 버림받은 비참함이나 절망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마음에는 미움과 복수가 아닌, 하나님께서 뜻하신 은혜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바로 용서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형들 앞에 섰을 때, 요셉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형통함의 은혜로 인해 형들을 용서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누려야 할, 형통함의 은혜도 요셉이 누린 ‘하나님의 형통함’과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시간을 돌아보십시오.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느껴 지시나요?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은혜로 행하셨습니다. 돌아보니, 우리의 삶의 고비 고비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살피시고,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선하신 뜻과 변함이 없으신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며, 하나님의 형통함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의 형통함의 흔적들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까? 요셉처럼 버림받고, 외면당하고, 팔리고, 갇힌 인생의 모습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저마다의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어려움이 무엇이든지, 우리가 살아야 할 믿음의 삶은 하나님께서 뜻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형통함의 삶입니다. 

요셉이 누린 형통함의 은혜를 보십시오. 그는 버림받음을 경험했지만, 마침내 다른 사람을 품고 살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상처를 받았던 요셉은 상처를 보듬어 평안과 화해를 이루는 형통함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셉의 삶에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형통함의 은혜를 부어 주시며, 요셉이 ‘용서라는 자유와 기쁨’ 속에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마음에 참 된 자유와 평안을 주시며, 그의 상처와 아픔의 자리가 구원의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창세기 50장 20-21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이루신 형통함의 은혜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요셉은 형들의 악함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았고, 자신의 상처보다 크신 하나님의 섭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형들을 용서하며, 그들의 자녀들까지 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형통함의 은혜’입니다. 

세상은 요셉이 애굽의 통치자가 된 결과를 형통함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의 통치자로 세우신 이유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의 마음을 따라 세상을 사랑으로 품고, 용서하고,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함 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형통함은, 고난의 상처를 덮어주시고, 미움과 분노의 흔적을 씻어 내시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의 뜻을 따라 살게 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형통함의 은혜를 통해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내 인생의 고난과 아픔의 흔적이 아닌, 하나님의 크신 은혜의 뜻과 섭리를 따라 살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내 삶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형통함의 증거와 흔적은 무엇입니까?

spot_img

최신 뉴스

인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