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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패밀리얼라이브] 화해 이야기 <4> 화해를 방해하는 것들 (화해가 어려운 이유들) 

<화해 이야기 4>       화해를 방해하는 것들 (화해가 어려운 이유들) 

지난 몇 번의 글을 통해 우리는 화해가 양자 간에 존재하는 장벽을 제거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활성화시켜서 긍정적인 상호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라는 점과 장벽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룬 화해는 양자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것이고 때로 양자는 자신들이 이룬 화해가 모두에게 예기치 않은 선물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무엇보다 화해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해를 이루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화해를 방해하는 것들, 다시 말해서 화해가 어려운 이유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화해를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용서했으면 됐지 굳이 화해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 혹은 “내가 사과했으면 됐지 굳이 화해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화해를 시도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이런 생각은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만들고 결국 양자는 서로를 향해 거리감을 가진 채로 지내게 됩니다. 비록 적대적인 감정은 해소되었다고 하더라도 서먹서먹한 마음을 가진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우리의 나태함과 관련이 깊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서로 용서하라”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화목하라”는 말씀 등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는 관계, 긍정적인 상호 관계를 맺으며 사는 데 있어서 적극적이고 부지런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들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나태함 등 화해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극복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둘째, 두려움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향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은 어떤 점에서 자존심이 손상되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화해를 시도하다가 나만 손해보는 것은 아닐까?’ ‘내가 화해를 먼저 청하면 내 쪽이 잘못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먼저 손을 내밀음으로써 상대방 아래에 서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먼저 화해를 시도했는데 상대방은 화해를 거절한다면 나만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닐까?’ 등의 생각이 화해를 방해하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므로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셋째, 우리 안에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 혹은 편견이 있다면 그런 것들이 화해를 방해하는 요인이 됩니다. 부정적인 선입견이 형성되는 가장 단순한 이유는 과거의 어떤 단편적인 사건에서 생긴 부정적인 생각을 다른 일들에도 일반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하나의 행동만으로, 특히 어떤 하나의 부정적인 행동에 근거해서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을 전인격적으로 아는 데 부정적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그 사람과 지속적으로 관계 맺는 것을 방해합니다. 때로 우리는 상대방과 긴장 혹은 갈등이 생겼을 때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편견 혹은 고정관념을 확대하기도 합니다.

또는 상대방이 속한 집단에 대한 편견이 있을 경우에 그것을 일반화 시켜서 상대방 개인에게 적용하는 경우에도 상대방과의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화해를 시도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아울러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은 우리의 교만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판단하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화해로 가는 길을 가로막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를 편견이나 고정관념 속에 가두고 현재 갈등 관계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언제라도 다른 사람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방해합니다. 누군가와 화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우리 각자 안에 화해를 어렵게 만드는 (고집스러운) 자아의 요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자신은 잘못한 일이 없다는 생각, 그래서 자신은 잘못한 일이 없음을 주장하는 태도는 화해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혹시 자신에게 잘못은 없는지 반성하는 태도보다 일방적으로 상대방의 잘못을 비판적으로 지적하는 태도는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나를 향해 비판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나에게 불평하고 나의 잘못을 지적할 때 일단 그(그녀)의 말을 들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변명하고 방어하는 말과 태도는 화해로 가는 길을 가로막습니다.

다섯째,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양자 사이의 소원한 관계, 적대적 관계, 단절된 관계가 개인적인 갈등의 이야기라면 이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부족 혹은 사랑의 부족 때문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천하기 아주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상대방을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 놓는 희생을 감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화해는 사랑이 부족한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고 성령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화해의 삶을 살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복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화해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우리를 먼저 찾아오셔서 우리가 담당해야 할 죄의 대가를 친히 대신 치르시고 우리와 화목하는 길을 열어 놓으신 하나님의 이야기가 바로 성경의 이야기이고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화목하라”(롬 12:18)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풀어서 설명하자면, 화해는 어느 한 쪽의 소원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고 쌍방이 함께 이루어가는 일이지만, 만일 그 일이 내 쪽에 달려 있다면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 사도 바울은 오랜 역사 속에서 원수처럼 지내왔던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장벽조차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허물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 2:14)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전쟁을 지켜보면서 전쟁을 하는 양국의 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복음의 이야기를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마음 가득합니다.

박진경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객원교수, Family Alive 대표, 홈페이지: www.familyalive.ca, 이메일: familyalive202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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