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설교단상 “더 나은 의로 사는 그리스도인”  (마 5:38-48) / 밴쿠버한인감리교회 임덕규 목사

[설교단상] “더 나은 의로 사는 그리스도인”  (마 5:38-48) / 밴쿠버한인감리교회 임덕규 목사

“더 나은 의로 사는 그리스도인”  (마 5:38-48) 

밴쿠버한인감리교회 임덕규 목사

샬롬.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 모든 하나님의 가족들 위에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너희 ‘의’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보다 더 나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예를 들어 ‘더 나은 의로운 삶’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하시면서, 세 가지 예를 들어 ‘더 나은 의로운 삶’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첫번째가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는 가르침입니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 오른손등으로 상대방의 오른뺨을 치는 것은 그 사람을 업신여기고 모욕하는 행위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서 같이 싸우는 대신 왼뺨을 내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렇게 되면 상대방은 오른손바닥으로 왼뺨을 때리게 됩니다. 이는 상대방을 대등한 입장으로 인정하고 때리는 것이 됩니다. 즉, 왼뺨을 돌려 대라는 주님의 가르침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상대방이 나를 존엄한 인간으로 대등하게 대우하게 만들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은 “모욕에는 보복”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모욕을 극복”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악을 악으로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롬 12:21). 이 길은 존엄한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대해 달라는 것과 그로 인해 악한 자와 평화를 도모하는 길입니다. 

예수님 악한 자를 대적하지 않는 삶에 대해 두번째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통 두 벌의 옷을 입었습니다. 속옷(χιτών, 히톤)과 겉옷(ἱμάτιον, 히마티온)을 입었습니다. 특히 겉옷은 겉에 걸치는 큰 외투로, 낮에는 옷이지만 밤에는 덮는 이불 역할도 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2:26–27에 따르면, 가난한 자의 겉옷을 빚의 담보로 잡아도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겉옷은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다같이 이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출 22:26-27, 개정) 『[26]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27]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 

겉옷을 빼앗긴다는 것은 단순히 옷 한 벌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엄과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법정에 고소해서 속옷을 빼앗으려 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극도로 가혹하고 모욕적으로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즉, 가난한 자에게서 겉옷을 빼앗을 수 없으니 속옷을 빼앗아 가지려는 것으로 가난한 자를 끝까지 짓밟아 벗겨내려는 부당한 억압과 불의한 행동입니다. 

보통이라면 억울하게 고발당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겉옷까지 내어주라고 하십니다. 만약 가난한 자가 법정에서 속옷을 빼앗기고, 겉옷마저도 벗어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신경을 쓴 것은 ‘명예’였습니다. 이런 문화에서 속옷을 빼앗긴 자가 겉옷까지도 벗어주는 행위는 고발자의 명예에 큰 손상을 입히는 행동이었습니다. 이 행동은 고발자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탐욕 때문에 수치심을 당하게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입니다. 피해자가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라 상황을 주도하는 존재로 바뀌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동적인 굴복이 아니라, 억압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길을 제시하신 겁니다. 이는 억압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적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여 넘어서는 새 길입니다(출애굽기 22:26–27). 예수님은 바로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이 가진 인간의 존엄을 드러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번째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예수님 당시 유대 땅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점령지 백성들에게 강제로 부역을 시킬 권리가 있었습니다. 특히, 군사적 필요가 있을 때 짐을 나르게 하거나 일정 거리를 동행하게 강요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예수님은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로마 군인들에게는 유대인을 붙잡아 자신의 군장이나 짐을 억지로 ‘오리’ 약 1.5km를 나르게 하는 법적 권리가 있었습니다. 이는 점령당한 민족에게는 큰屈辱(굴욕)과 모욕감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로마의 압제에 분노했기에 이런 강제노역은 굴욕屈辱의 상징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열심당원들은 이런 억압에 반항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서 새로운 길을 제시하십니다. 

보통은 억지로 짐을 지게 되면 “딱 오리만” 가고 짐을 내려놓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자원하여 ‘오리’를 더 가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억압을 당하는 자가 능동적으로 태도를 바꾸는 혁신적 행위입니다. 로마 군인이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더 오리는 가는 것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억압이 아니라 자유가 됩니다. 또한 나는 억지로 짐을 지는 ‘가축’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내 의지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을 ‘친구’로 대하겠다는 뜻입니다. 

나를 탄압하는 사람을 친구로 대한다는 것 어쩌면 말도 안 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살라고 하십니다. 더 나아가 원수마저도 사랑하며 친구로 대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원수마저도 사랑하며 친구로 대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은 내 친구의 어려운 형편을 살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땅은 로마의 무거운 세금과 착취로 인해 부의 양극화가 심했습니다. 땅을 빼앗기고 빚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많았고, 소작농과 가난한 이들이 늘어났습니다. 이 때문에 “꾸고자 하는 자”는 주변에 흔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자들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취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동족에게 이자를 취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출 22:25, 레 25:36–37).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많은 가난한 자들이 빚 때문에 큰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노예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런 사회적 상황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예수님은 단순히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구하는 자에게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나에게 필요를 말하는 사람을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응대하라는 것입니다. 당시 사회에서 가난한 자는 자주 거절당하고 무시당했습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과 달리 하나님의 자비로운 성품을 따라 그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며 살라고 요구하신 것입니다. 세상은 “내 것을 지켜라, 손해 보지 마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이 있다”(행 20:35)는 원리를 내세우시며, 나눔을 통해서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 백성답게 살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위의 예시를 통해 단순히 ‘무조건 참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보복하지 않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억압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지키는 창조적인 길을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억압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이 자유롭게 사는 길, 보복을 넘어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 이웃을 진정 사랑하는 길, 즉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것이 ‘더 나은 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더 나은 의’로 살아 고난과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그것을 나누며 살기 바라십니다. 이 길을 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이 길을 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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